큰 아이 중학교 선배 할머니를 성당에서 만나 손자의 안부를 물어보았다.
우리 아래층에 살던 아이였는데,다른 동으로 이사를 가서 재수한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결과를 알지 못하고 있어서,늘 마음속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던 그 학생 소식이 궁금했다.
할머니 손자 대학 어뜨케 되었어요? 성대도 되고 고대경영학과 4년 장학생인데 성대갔어...
엥? 할머니 고대 장학생이 왜? 성대가요? 서울대 경영학꽈 ! ...아
기준치에 미달하는 내 생각은 그 학생의 기준치를 성대로 생각했었나 보다.(정말 부끄럽)
그러면서 여러가지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초등학교부터 그 학생을 보아온 터라 그 아이를 내 아이 만큼이나 잘 알고 있고,내 자식 아니지만
내가 아끼는 아이였다. 내 자식 설대간 것 만큼이나 기뻤다.
그 학생의 엄마와 내가 우리 아이들 키우는 방식은 조금 다르다.
나는 큰 아이의 경우(둘째는 아니다) 남다르게 키워본다고 남편과 합심하여 재단하듯이
키웠다.사립학교보내고,그 학생도 물론 교대부속을 나왔지만...학원 절대 보내지 않고
영어도 조기영어교육(조기영어가 없던 시절) 영어뉴스에 토플만점에 수렴시키고
수학경시 금상수상에 영재교육원,전교일등,학생회장등...화려한 스펙을 자랑하며 주위의
부러운 시선을 부담스러워하며 오늘까지 지역에서는 유명한 아이로 키웠다.히플러님의
인터뷰을 사양한 것도,신문기사의 취재를 거부한 것도,알만한 사람에게는 알려진 아이라서
그 시선이 너무나 부담스럽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에 조용히 살고 싶었다.
그러나...이렇게 중학시절 보낸 아이도 고등학교 오니 평범하게 학교를 다닌 애들과 똑같이
고통스럽다. 고통이라는 것은 말과 글로는 표현 할 수 없는 아픔이다.게시판에 호소하고 싶어도
호소할 수 없는 우리나라 교육제도의 문제점과 얽힌 개인적인 문제라 올릴 수 없다.
평균 98.89를 받기 위해 ...이렇게 살아야 하나!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아무튼 그 영광과 기쁨의 순간뒤에는 늘 고통이 함께 하였다.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런데 서울대 합격한 학생을 생각해 보면...
그 아이는 양쪽 부모님이 교수이지만 교육에 관심이 없는 부모 아니야 ?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편안한(?) 초,중,고 생활을 보냈다.중학교때 집앞에 있는 문법하며 해석하는 영어 학원
한군데 다니는 것이 그 학생의 일과였다.특이한 것은 피아노가 상당히 수준급이어서 그 집
피아노 위에는 온갖 콩쿨에서 받은 상패가 가득하고,플릇도 상당히 수준급이었다.
엄마가 학교가시고 아이를 관리하는 스타일이 아니셔서 외아들인 아이는 늘 한가해 보였다.
성적도 물론 중상위권을 왔다갔다하는 정도 였고,우리 아이 중2 영재원 다닐 때 새벽 2시에
잠드는데 이 아이 방은 11시면 불이 꺼져있었다...
고등학교도 널널한 곳으로 가서 엘레베이터에서 만나 몇시에 자냐? 물으면 컨디션조절을 위해
12시에 잔다고 하는 아이였고,고등학교 성적 역시 시원치 않다고 그 아이 엄마는 아이가 공부
방법도 모르는 것 같다고 편안하게 말씀하셨다.
역시 그 아이는 대입에서 3패(세군데 원서내고 세군데 모두 불합격)하고 재수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장을 보고 와서 무거운 짐이 있으면 달려와서 내 짐을 들어주던 착하고 악기를 잘 다루던 그 아이가
늘 보고 싶었다.그리고 그 아이의 소식도 궁금하였다...
그런데...그 아이가 재수해서 서울대 경영학과에 합격했다는 것이다.너무나 기쁘다.
재수생부모에게는 함부로 전화하기도 부담스러웠는데,그 학생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밥이라도 먹이겠다고 하니..지금 미국에 있다고 한다.영어공부하러 연수떠났다는 것이다.
정말...요즘 시대에 영어를 잘 못 배우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수능끝나고 영어의 바다에 빠져
대학1학기 영어에 올인하고 상당한 영어능력이 되어 영어끝낸다는 각오로 두달간 미국갔다는 것이다.
아...난 늘 유통성없이 늘 한가지 길만 생각하며 살았고,우리 아이도 나를 따라 힘들게 힘들게 걸어왔다.
하기는 나를 따라 왔다기보다는 자신의 성취욕구가 강해서 그 길을 택한 쪽이었다.사실 난 속으로는
원했지만,수학경시나 영재원교육은 강하게 반대했었다.하지만 아이가 좋은 성과를 거두면서 그 성취감은
마약처럼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존재처럼 따라 다녔다.그러면서 우리는 힘들고 허덕거렸다.
그 학생의 꿈과 우리 아이의 꿈은 공교롭게도 똑같다.
수학을 잘하는 두 아이들의 꿈은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금융 수학자'로 일하는 것이다.
우리 아이는 그 길을 가기위해(?) 어려서 부터 치열하게 살아왔고,그 학생은
널널하고 여유있게 ...그래서 그런지 아이가 여유있고 심성이 온순하다.
치열하게 살아왔던 우리 아이...지금도 여유가 없고,성격이 까칠하다.시험이 끝나고 원하는
결과를 얻어야만 여유가 생기고 얼굴에 웃음을 볼 수 있다....가슴 아프다.
똑같은 목표를 향해 가지만...
길은 여러가지 인데,이렇게 하면 안될 것 같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시라고 이런글을 씁니다.
중학교 성적이 중상위권이라고 실망 할 것도 없고,우리 아이는 영어를 일찍시키지 않아서
다른 아이에게 낙오될 것 같은 우울한 마음으로 힘드신 분들 용기내시라고 올리는 글입니다.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편안하게 물흐르는 것 처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요즘 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될 놈은 다 되고,부모가 아무리 안달을 떨어도 부모 맘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자식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여유를 가지고 아이를 키우시라고 안달부리며 아이를 키웠던 경험자로서 말씀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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