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을 했지요, "내 아들은 천재다!" 6년 만에 공들여 낳았는데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여기사 천재를 주신 게 틀림없다.
증거 1: 애가 걸어 다니기 시작할 때 알파멧 매트를 깔아주었습니다. 'D'하고 소리 치고 애랑 D로 뛰고..... 어느 날 오줌을 바닥에 찌익 싸더니 '에쓔, 에쓔'하대요. 오줌이 흘러 S 모양이 되었습니다.
증거 2: 세 살에 자동차 이름을 다 외워요. 미국에 1차 체류할 때였는데 거긴 미제차, 일제차, 유럽차, 한국차 다 있잖습니까. 밀가루로 반죽해 오븐에 구운 알파벳 모형을 주었더니 어느 날 VOLKSWAGEN 이라고 늘어놓았습니다. ‘옴마나, 조것이 독일언디.....’
증거 3: 5세 무렵 자동차를 3D로 그려요. 상, 하, 좌, 우 입체감이 딱 나게 온갖 자동차를 다 그려요. 자동차 잡지를 구독하며 수 백대의 자동차 값을 다 외웁니다.
짜짠~ 제가 무슨 짓을 한 줄 아십니까? MIT 자동차 공학과로 무전을 쳤습니다, 아니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느그들 조기 영재 프로그램 없냐? 줄리아드 음대는 영재 학교가 있어서 토욜에 특별 수업하는디. 느그들 그런 거 있으면 내 애 좀 봐줘라. 얘가 보통 애가 아니여.”
같잖은지 답이 없습디다.
그런데 얘가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수상쩍은 행동을 해요. 이때는 미국에 2차 체류할 시기였는데 피아노를 몇 년을 쳐도 ‘솔’도 몰라요. 칠판을 사다놓고 그림을 그려가며 수학 응용문제를 풀어줘도 맹한 눈으로 나를 봅니다. 그리곤 맨 날 먹는 타령만 해요. 눈 뜨자마자, “엄마, 아침밥이 뭐에요?” 아침밥 먹으면서. “엄마, 저녁 때 뭐 주실 거예요?” 밥숟가락 입에 넣으면서, “엄마, 학교 급식표에 오늘 메뉴가 뭔지 봐주세요.” 나참....
바야흐로 5학년 때 한국에 돌아와 중학교에 갔습니다. 이젠 대놓고 비천재활동을 합니다. 교복 입고 패션쇼를 하는데 이쁘긴 이쁘대요. 그럼, 뭐합니까? 성적표가 걸레인데. 미국 생활 한 5년 쯤 한 애가 영어를 100점 못 맞아요. 우리 애가 여럿 행복하게 했습니다. “쩌그, 미국 살다 온 시키가 백점 못 맞는 영어면 울매나 어렵겄냐. 긍께 우리도 개안타.” 아참, 부산이지, “야야, 가 미국 살다 온 시키 아인나. 가가 영어를 백쯤 몬 만는다. 영어가 울매나 어려브믄 그라겠노. 마, 우리도 개안타. 내는 60점 맞아도 싸다.”
저,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 눔의 시키 포기하느라고, MIT에 무전까지 쳤던 내가 X팔려서, 원. 그렇다고 예술적이길 한가, 운동을 잘하나 도대체 쓰잘 데가 없는 겁니다. 사춘기가 오면서 저를 배척하기 시작합디다. ‘그래 너 잘났다.’하는 투가 역력해요. 그 때부터 제가 변하기로 했습니다. 못마땅해 꾸중하고 싶은 마음을 혀를 물고 참았습니다. 무조건 칭찬 모드로 돌입, ‘너는 뭐를 해도 이쁘다, 무조건 잘 했다’했지요. 똑똑한 애들은 무조건 칭찬하면 기분 나빠한답니다. 근거 없는 칭찬은 자기를 기분 좋게 하여 내가 원치 않는 일을 하게하려는 음모라고 받아들입니다. 우리 애는 그런 거 없습니다. 아주 좋아 죽습니다.
그렇게 제가 변했습니다. 아이는 성적이 차츰 좋아져서 그닥 뛰어나지는 않아도 제가 죽자사자 뒷바라지 하면 제 밥벌이는 하겠습니다. 중게에 올린 제 글에 어느 분이 어려서 준 기쁨으로 자식들은 효도를 다 하는 거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답했습니다. 내 새끼가 어려서 준 기쁨이 뭔가? 첫째, 기저귀 차고 방싯방싯 웃어준 것; 둘째, 오줌 싸고 ‘에쓔’ (S) 한 거. 셋째, 2학년 때 생애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상타온 거; 넷째, 중학 교복 입고 패션쇼 한 것; 다섯째, ?? 암만 생각해도 더 이상 없음. 아들아, 도대체 너는 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