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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엄마의 화려한 외출

  • 종이홍
  • |
  • 2009-05-22
3

 

고3 엄마의 화려한 외출

                                         장석영

  세상을 살다보면 고통스러운 일이 참 많다. 하여 불가佛家에서는 인생을 고해라 했고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을 늘 불안, 번민, 죽음에 대면한 존재로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의 황벽선사黃檗禪師는 활짝 핀 매화를 보면서 ‘매서운 추위가 뼈 속을 관통할 정도로 몰아치지 않았던들 어찌 매화에서 코끝 가득히 전해오는 향기를 얻으리요不是一番寒徹骨 爭得梅花撲鼻香’라고 하여 인생사 고통과 역경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어려움을 극복해 나간 후에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에는 의학적으로도 설명하기 힘든 소위 ‘고3병’이라는 게 있다. 자녀를 둔 가정에서는 한번쯤 겪었거나 겪어야할 이 증상은 당사자만 겪는 게 아니라 온 식구가 같이 치러야 하는 특이성이 있다. 특히 자녀의 어머니는 아이가 대학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이를 자신의 잘못으로 생각하여 심한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대입 자녀를 둔 어머니들은 이래저래 크고 작은 스트레스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겨우내 얼어 있던 대지 위로 비단결 같은 바람이 스쳐 지날 때, 우리학교에서는 학부모 입시 설명회가 있었다. 설명회가 끝난 후 나는 Y군의 어머니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그와 얘기를 주고받는 동안 번뜩 ‘희생’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지난 30년 동안 교직에 있으면서 수재아秀才兒 뒤에는 반드시 한 사람의 희생자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훌륭하게 성장한 Y군 뒤에서 힘들게 뒷바라지 했을 어머니의 고생이 생각났던 것이다.

  상담이 끝나고 학생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간 후, 내 머릿속엔 Y군을 축으로 한 그 어머니의 희생적 삶이 계속해서 맴돌았다. 결코 평범하지 않으면서도 평범하게 살아가는 그의 모습에서 삶의 진솔함을 캐 낼 수 있었다. 그는 아내로, 어머니로, 학부모로, 선생님으로, 봉사자로 1인 5역을 하며 사는 사람이었다.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것처럼 정교하게 이어지는 그의 하루생활은 보통 사람은 흉내조차 낼 수 없을 정도였다.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서 남편 출근시키고 뒤이어 아이 등교시킨 다음에는 학교에 나가 강의를 한다. 야간에는 학부모 대표로 학부모회를 주관하는 일에서 쉬는 시간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이러한 일상은 차치물론하고도 그가 자신의 삶을 위해 쏟는 정성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이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자정까지는 자신의 수업준비를 하고 아이가 심야 독서실에 가 있는 동안에는 기도로 가족의 안녕을 빈다. 그러고 나서 새벽 두시 넘게 들어오는 아이를 맞이하고 아이가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자신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거의 세시가 다 된다. 그의 생활에너지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더욱 새로운 환경으로 이어진다.

  봉사자로서 역할이다. 그는 자신보다 어려운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나눔 봉사를 하고 있다. 하루 서너 시간 수면을 취하면서도 주말이면 어김없이 양로원에 가서 의지할 곳 없는 노인의 수발을 들어 주는 일과 불우시설에 수용된 어려운 사람들에게 간식을 챙겨주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가 남을 위하여 자신을 돌보지 않고 애쓰는 것은 자신의 역할에 대한 확신을 가짐은 물론 다른 사람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갖기 위함이다. 다른 한 편으로 아이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어머니의 모범적인 행동을 보여줌으로써 아이가 좀 더 현실 문제를 이해하고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일 수도 있다. 그는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나서는 것처럼 마음 설레는 일은 없다며 자신의 일상에서 가장 화려한 외출이 바로 이때라고 말한다.

  이렇듯 그가 살아가는 현실은 온전히 자신을 버리고 남을 먼저 생각하는 희생의 생활이다. 희생은 대가를 바라고 하는 행동이 아니다. 내 마음이 시켜서 절로 내 삶은 뒤로 미루고 다른 사람의 장래를 앞에 두고 생각하는 것이 희생이다. 그래서 희생 속에서 드러나는 고통은 그 고통이 아무리 심할지라도 참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며 극복할 힘도 주는 것이다. 희생은 미래의 행복을 위해 의도된 고통이기도하다. 희생적 고통은 정신적 유도작용으로 사랑의 힘을 솟게 하여 육체적 고통을 반감시킨다. 희생적 고통을 아름답게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사랑이라는 묘약이 필요한데 이는 내 자신을 먼저 사랑하는 일이다. 자신을 사랑하다 보면 다른 사람의 장점이 눈에 들어오고 생활에 여유가 생기게 된다. 특히 자녀 교육에서 어머니의 자기희생적 사랑은 아이가 조화로운 인간으로 성숙하는데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어려서부터 어머니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는 자기 스스로 삶을 윤택하게 꾸려 나가게 됨은 물론 남에게도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이타적인 사람으로 성장하게 된다. 늘 묵묵하게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어머니로부터 아이는 삶의 근본을 배우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것이다.

  ‘아이들은 어머니의 희생을 먹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희생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바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식에 대한 어머니 사랑을 희생적 사랑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머니는 힘들면 힘이 들수록 오히려 강인한 생명력으로 삶에 집착을 보인다. 물론 이러한 생활은 당신의 삶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식을 위해 바쳐지는 것이다. 특히 대학입시를 전쟁에 비유하는 우리나라에서,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뒤돌아서 눈물을 삼키고 시커멓게 타버린 가슴속을 감추려 애쓰기도 한다. 하지만 학부모의 이러한 헌신적 사랑은 한 인간을 완성시키는 밑불이 되며 이 사회를 지탱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1년 뒤 Y군은 서울대에 합격했다. Y군은 일상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고통을 극복할 수 있었으며 새로운 동력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합격자 발표가 있고 나서 합격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Y군은 ‘고통의 궁극은 선善으로 연결된다는 생각을 늘 머릿속에서 정리하면서 살았으며 고통이 선과 연결되어있을 때 고통은 고통으로써 끝나지 않고 보다 밝은 미래로 연결됨을 확신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늘 어머니의 희생이 자신의 삶을 포기한 것이 아니고 인생에 주어진 삶을 더 윤택하게 살아갈 수 있는 한 방법이기를 빌었고 이제는 자신이 이룬 작은 꿈 위에서 더욱 건강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고등학교 3학년 과정은 인생이라는 고해苦海에 첫발을 내딛는 단계이다. Y군의 어머니는 지난 1년을 회상하며 고통의 바다를 어차피 건너야 된다면 학생이나 학부모는 앞서 겪은 선배들의 행적을 열심히 따라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말에 ‘부자가 되고 싶으면 부자 대열에 서라.’는 말이 있다. 좋은 대학에 합격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훌륭한 대학에 합격한 사람의 생활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얘기이다. 맞는 말이다. 선배의 현명함을 좇아 그들의 훌륭한 생활방식을 배우다보면 현재의 고통은 잊고 성숙한 자신의 미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져서 어려운 일을 참고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2009년5월 순수문학에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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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도맘
  • |
  • 2009-05-25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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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섬기며 살아가는 삶속에서 오늘도 제 삶을 돌아봅니다.

그 어머니의 그릇이 있기에 그 아들이 있는 것을 오늘 또 깨닫습니다.

섬기며 배푸는 삶속에 봉사하는 마음 잃지 않고 앞으로의 삶을 계획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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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날은 간다
  • |
  • 2009-05-23 21:18
답댓글

안녕하세요~ 종이홍님.

이글을 올리신 종이홍님 대신 제가 추가로 덧붙이고 싶어서 몇 자 적습니다.

이글은 사실 종이홍님의 고3 담임이 수필가이신데 종이홍님을 뵙고나서 올린 글이라고 하네요.

원래 열심히 사신분이란것은 알았습니다만.. 이 정도이신줄은 몰랐네요.

이번에 아이가 서울대 들어갔다면서요. 축하드려요!! 그런 정성이 어디로 가겠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아이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 감개무량하네요. 요즘애들 그렇게 부모의 희생과 정성을 몰라준다고 해서 말들이 많은데..그런 면으로 참 부럽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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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정시인
  • |
  • 2009-05-22 23:47
답댓글

이시대의 엄마들, 1인5역을 완벽하게 해나가는 분들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어요. 가깝게는 울 시어머님. 제 자신도 그런분들을 보며 어느 순간 그렇게 살아야지 하고 무리하고 있었더랬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부분을 접었습니다. 어느 순간 너무 지치더라구요. 어느 정도 포기하고 접고 나니 지금은 훨씬 편해지고 있습니다. 모든 역할을 다 충실히 한 다는 것이 맞는 걸까? 종이홍님이 올려주신 글로 많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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