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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1 첫 시험을 위한 뒷바라지(?)

  • juice
  • |
  • 2009-04-28
24

제가 살고 있는 대구는 저녁때 비가 잠깐 왔었어요. 오늘 제 생일이어서 남편과 정빈이와 함께 정원이 아주 예쁜 레스토랑에서 오랜만에 외식을 했는데 초록색이 비를 맞으니 어찌나 예쁘던지요. 큰 창으로 보이는 창밖 풍경만으로도 멋진 생일 선물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대학 기숙사에 있는 예슬이가 같이 하지 못해 많이 서운했었어요.

“시험 기간 중에 이렇게 느긋하게 나와서 저녁 먹는 사람도 없을 거다.”

남편이 한 마디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차피 지금은 저녁시간이고 집에 있어도 이 정도 시간은 쉬어요. 그리고 아무리 시험기간이라고 해도 어머니 생일인데 가족과 함께 해야지요. 언니는 시험 기간인데도 비록 며칠 앞당긴 주말이기는 하지만 그 멀리서 왔다 갔는데. 이런 일 있음 그 전에 시간 조절 잘 해서 시간을 내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시험이라서.... 라는 건 핑계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당연하지, 라고 말했지만 누구보다 고마운 것도 사실이에요. 

 

요즘 많은 학교가 1차 지필고사(예전엔 중간고사라고 했었지요.^^)를 치고 있을 겁니다. 아이 시험기간이 되면 온 집안이 시험공부 모드로 변한다고 합니다. 예민해진 아이 신경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조심. 하지만 저는 생각이 좀 달라요.

한 예로 오늘이 제 생일이라 미역국을 끓였습니다. 시험에 무슨 미역국? 하실지 모르지만 저는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시험에 관해 스스로 징크스를 만들지 말았으면 해. 미역국을 먹어서 못 쳤다든 지, 공부한 거 빠져 나간다고 머리를 감지 않는 다든 지 등등. 스스로를 어떤 테두리 안에 가두는 것에 지나지 않아. 공부는 네 일이야. 극히 개인적인 일이지. 그 일로 온 집안이 너를 중심으로 인해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시험공부 쉽지 않다는 것도 알아. 고생한다는 것도 알고. 그렇지만 어머니나 아버지는 네가 시험 공부하는 것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매일을 직장에 다니고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아. 물론 가족이니까 신경 써 주고 조심해 주려고 노력은 해. 그렇지만 시험이 전부 인 냥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거지. 늘 이야기 하지만 공부 유세 아님!”

 

아이는 시험으로 인해 많이 긴장하고 예민해지는 게 당연할 겁니다. 그럴수록 주변의 사람들이 편안함을 제공(적절한 단어가 생각이...ㅠㅠㅠ)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한 예로 어제 퇴근하고 집에 가니 정빈이가 문제집을 사러 가자고 하더군요.

중학교 들어 가 처음 시험이라 스스로 어떤 준비를 하는 지 그냥 지켜보고 있던 중이었거든요. 놀토까지 있었던 주말을 보내고 학교에 가니 아이들이 시험 공부한 이야기들을 많이 한 모양이에요. 누구는 밤샘을 했다더라, 누구는 문제집을 과목당 몇 권 씩 풀었다더라 등등. 정빈이도 문제집을 사서 풀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에요. 아이와 함께 집 부근 서점에 갔습니다.

“골라 봐. 어떤 걸 사고 싶어?”

“으음~~~ 일단 필이 오는 걸로 골라야겠지요? 근데 몇 권 사요?”

“글쎄 몇 권 살 지는 네가 알아서 결정을 해야지. 내일 세 과목 시험인데 오늘 얼마나 풀 수 있을 지 생각해 보고.”

“문제집만 잔뜩 사 놓고 드르렁 드르렁 자는 거 아닌 지 모르겠네. 몇 권이나 풀 수 있을까요?”

“그건 네가 하기 나름이지. 한 권도 못 풀 수도 있고 여러 권 풀 수도 있고. 그렇지만 잠은 잘 자야 해. 시험 치다 졸면 안 되니까.”

“맞아요. 제일 어려운 것이 눈꺼풀이에요.”

 

여기서 잠시 눈꺼풀 이야기.

얼마 전 정빈이와 학교에 관해 이야기를 하다가

“수업 시간에 무엇이 제일 어려워?”

라고 물었었습니다. 저는 국어, 영어 등 어떤 과목이 제일 힘드냐고 물은 것인데 정빈이의 대답은 이랬어요.

“수업시간에 제일 어려운 것은... 눈꺼풀요. 어찌나 감기는 지. 눈꺼풀이 제일 어려워요.”

그래서 그 후 이런 질문을 종종 하지요.

“그 어려운 눈꺼풀은 어떤가요?”

정빈이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여전히 어렵습니다.”

아직도 정빈이에게는 자꾸만 감기려는, 특히 점심시간 후, 5교시의 눈꺼풀이 가장 어려운 모양입니다. ^^

 

문제집을 사는 동안 저희 모녀는 깔깔거리며 즐거웠어요. 그런 저희를 보고 서점에 있던 한 분이 그러더군요. 그 분도 아이의 문제집을 사러 오신 것 같았어요. 정빈이에게 이러는 겁니다.

“너희 집은 참 좋겠다. 문제집을 사러 와서도 이렇게 신나게 웃는 걸 보니.”

제가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니까요.

“이거, 이거 이 문제집이 피~~일이 화악 와요. 일단 이건 꼭 사야겠어요.”

“아, 이건 우리 반 아이들이 거의 다 풀고 있는 문제집이에요. 그러니 저도 이것 정도는 풀어주는 센스.”

너무 귀엽고 이쁘잖아요? 엄마를 미소 짓게 만들어 주니까 당연히 웃을 수밖에요. 결정적인 마지막 대화.

“지금 문제집을 사서 다 못 풀면 어떡하지?”

“글쎄요.... 괜찮아요. 다 못 풀면 뒀다가 기말에 풀면 되지요, 뭐.”

이러는 아이를 보고 어떻게 웃지 않을 수 있겠어요?

 

문제집을 사 온 정빈이는 나름 열심히 공부를 했답니다. 그리고 오늘 점심때쯤 시험이 끝나고 전화가 왔더군요.

“언제 오세요?”

“여보세요, 예쁜 천재(정빈이 별명 중 하나입니다). 네가 시험 치느라 일찍 집에 왔다고 어머니도 퇴근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우린 아직 점심시간도 안 되었어요.”

“아, 그래요. 저는 제가 마쳐서 그만 착각을. 푸하하하”

“우리 이쁜 딸 오늘 수고 많았어. 점심 챙겨 먹고 낮잠을 한 숨 자던 지 좀 쉬어.”

“네에~~~ 참, 컴퓨터 하면 안돼요? 잠시만요.”

“오늘은 토요일이 아니에요.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험 기간이라고 해서, 공부한다고 나름 고생한다고 해서 특별히, 라는 건 없어요. 이따 어머니 퇴근해서 같이 음악 1시간 정도 같이 듣기로 하자. 어때?”

“알았어요. 음악 같이 듣는 거 약속 지켜야 해요.”

예슬이가 그러더군요. 제가 한 번도 시험치고 온 자기에게 ‘시험 잘 쳤어?’라고 묻지 않아 너무 고마웠다고. 늘 ‘우리 딸 수고했어.’ 이렇게 말해줘서 정말 고마웠다고.

전 그렇게 생각해요. 세상에 시험을 못 쳐도, 그래서 성적이 나빠도 괜찮은 아이는 없다고. 시험 점수는 그 어떤 누구보다 아이 스스로에게 가장 큰 것이라고. 그러기에 시험 치고 돌아오면 늘 아이를 안아 등을 토닥여주며 ‘수고했어.’라는 말만 했었어요. 그리고 오늘 정빈이에도 마찬가지이고요. 비록 떨어져 있어 안아주고 등을 토닥여 줄 수는 없었지만요.

그리고 퇴근해서 같이 음악을 듣고 수다를 떨었어요. 정빈이가 좋아하는 빅뱅의 노래도 듣고 제가 좋아하는 이은미의 노래도 듣고.

외식으로 저녁을 먹은 뒤 정빈이만 열쇠 줘서 집으로 들여보내고 남편과 저는 잠시 데이트를 했습니다. 아이가 시험 기간이라고 해서 남편과의 데이트를 하지 않을 수 없잖아요.^^ 

 

1시간 후, 즐거운 데이트 하시고 오라던 정빈이를 위해 ‘뒷바라지’하느라(?) 졸음을 참으며 거실에서 잡지책을 보고 있었는데 화장실 가기 위해 나온 정빈이 하는 말

“왜 안 주무세요?”

“너 뒷바라지 하느라고. 시험 기간 동안 뒷바라지하라며.”

“허걱. 뒷바라지는 무슨.... 아무 것도 안 하시면서. 안 하시는 게 아니라 도리어 방해를 하고 있는 거 아세요?”

“내가 무슨 방해?”

“책장 넘기는 소리가 어찌나 큰 지... 참나.”

“이 책장 넘기는 소리가 들린단 말이야?”

“그럼요. 다 들려요. 못 믿으시겠으면 제 방에 들어가서 제가 여기서 책장 넘길 테니 들어 보시던지요. 뒷바라지 안하셔도 되니 들어가 주무세요.”

“야, 솔직히 말해 뒷바라지 할게 뭐가 있냐? 내가 대신 시험공부 해주랴? 뒷바라지 할게 있어야 하지.”

“그러니 신경 쓰지 마시고 들어가 주무세요, 어머니.”

제가 많이 바쁠 때 유일하게 휴식 겸 스트레스 해소로 이용하고 있는 방법이 패션 잡지를 보는 것인데, 잡지책 넘기는 소리가 그렇게 큰 줄은 몰랐네요.ㅎㅎㅎ

 

정빈이는 스스로 해보겠다던 시험 준비에서 몇 가지 시행착오가 있었다네요.

생각보다 시험공부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 그래서 다음 시험부터는 조금 더 빨리 시작하고 하루에 공부하는 시간도 조금 더 늘려야겠다는 것.

첫 날 1교시 과학 시험에 너무 집중해서 다른 과목과의 시간 안배를 잘 해야겠다는 것.

1교시가 과학이 아니라 사회였더라면 사회를 열심히 했을 텐데... 합니다.

이렇게 스스로 깨우쳐가며 자신의 삶을 채워가겠지요.

‘어머니가 1학년 과학을 가르쳤더라면 문제 나올 만한 것들을 뽑아 줄 수도 있었을 텐데...’

하다가 스스로

‘하긴, 우리 어머니가 절대 그럴 분이 아니시지.’ 하는 정빈이.

이 부분은 예슬이 때와 같다는 생각에 혼자 웃음이 났어요. 예슬이가 그러더군요.

“친구들은 어머니가 과학 선생님이라서 예상 문제 다 뽑아 줄 테니 저보고 과학은 걱정 없겠다고 하는데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지요. 어머니는 한 번도 그러신 적이 없으시잖아요. 처음에는 그게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더라고요. 쉽게 할 수 있는 길이 있는데... 그렇게 하면 분명 도움이 될 텐데... 안 해주시니까.”

제가 아이들에게 과학 시험을 위해 특별한(?) 도움을 주지 않는 것은 스스로 중요한 것을 알아내는 힘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어요. 선생님들마다 생각이 다르다는 것도 있지만 이건 나올 거야, 이건 그리 중요하지 않아, 하며 아이를 도와준다면 당장의 시험성적은 좋을 수 있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가 없다는 생각에서 스스로 힘을 기르기를 바랐던 거죠. 지금도 마찬가지이고요.

과학 선생의 딸로 산다는 거.....   

3월에 쳤던 진단 평가에서 유일하게 과학에서만 틀렸다며 정빈이가 이러는 겁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과학을 틀리다니... 과학 선생님 딸이....”

엄마가 과학 선생님이라 과학을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여보세요, 아가씨. 과학 선생님과 과학 선생님의 딸은 별개의 인생이에요. 과학 선생님의 딸이라고 해서 꼭 과학을 잘하라는 법은 없어요. 넌 네가 잘하는 것이 있는 윤정빈일 뿐이라는 거지. 과학 선생인 이영미와는 다른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중학생이 되어 처음으로 학교 시험을 치고 있는 정빈이. 아이는 윤정빈이라는 자신의 삶의 중심에서 낯선 새로운 경험들을 통해 조금씩 성장해 가리라 믿습니다.  시험을 잘 치게 도와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의 시점에서 인생을 잘 준비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스스로의 공부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과정을 경험할 수 있도록, 실패와 그를 극복하고 더 높은 곳으로의 도약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든 아이들이 시험의 결과는 좋았으면 바랄겁니다. 스스로가 만족할 만한 결과를 받으면 좋은 것이고 혹여 그렇지 못하더라도 아이가 시험의 결과로 인해 자존감이 상처 받지 않도록, 조금 더 희망을 가지고, 조금 더 열심히 해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가장 큰 '뒷바라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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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현주
  • |
  • 2009-05-03 22:08
답댓글

아유, 이런 청량제 같은 글이 있었네요.

읽고나니 왜 이리 기분이 좋아지나요.

아들내미 붙잡고 시름하지 말고 저도 통통 틔면서 살살 띄어가며 말해야겠어요.

청량 글 쥬스 따라주신 juice 님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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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uice
  • |
  • 2009-05-04 15:37
기분이 좋아지셨다니 제가 더 고맙습니다. ^^
이곳은 제가 많이 배운 곳이에요. 엄마표 영어를 할 때 큰 힘이 되어 주었고 그 덕에 저희 큰 아이가 엄마표로 영어만큼은 잘한다고 자타가 인정을 하거든요. 그래서 늘 마음의 빚(딱 떨어지는 단어는 아니지만 ㅠㅠㅠ)같은 것이 있어요. 제가 가진 작은 것이라도 나누고 싶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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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구쟁이맘
  • |
  • 2009-05-01 10:00
답댓글

야아~ 너무 좋은 글입니다.

엄마가 이렇게 하기까지 많은 내적인 수양을 하셨을거라 생각됩니다.

앞으로 님의 팬이 되겠습니다. ^^

참! 전에 게시판에 소개해주신 책도 찾아서 읽어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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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uice
  • |
  • 2009-05-04 15:34
내적 수양이기보다는 저를 아는 분들은 저보고 '자기애'가 아주 강하다 놀려(?)대곤합니다.
저는 행복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거든요. 어떤 상황이든 행복하고 싶은 마음을 가장 먼저 떠올리곤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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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딸하나맘
  • |
  • 2009-05-01 07:38
답댓글

아이 낳고 잠시 우울증에 걸렸더랬죠. 이 험한 세상에서 너를 어찌 키우냐!! 그 막중한 책임감이며 아이의 마지막까지 지켜주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때문에 .. 하지만 아이는 자신의 삶을 살면서 부딪치고 깨져가면서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부터는..서서히 마음이 안정이 되더군요. 제 실수투성이 삶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듯..아이 역시 실수와 실패를 통해서 뭔가를 배우고 스스로를 바로 세울 수 있는 힘을 키울 거라구요. 세상에 대해 좋지 않은 편견을 가진 엄마의 부정적인 생각만큼은 배우지 않길 바라지만요~ 어쩌면 아이가 아직 어리기에 가지는 생각인지도 모르겠어요. 과연 아이가 내일 시험인데도 juice님처럼 여유롭게 아이를 대할 수 있을 지는 장담못하겠네요. 그러고보면 쑥쑥에서 배우는 게 참 많아요..바쁜 길 가는 길에 잠시 서서 여유롭게 나 자신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네요..

  •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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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uice
  • |
  • 2009-05-04 15:32
좀 식상할 지 모르지만 저는 긍정의 힘을 믿는답니다. 사람들은 간혹 제게 종교인이냐 묻기도 해요.^^
친구는 어디서 나오는 지 모를 근거없는 저 긍정을 어찌 할꺼냐 혀를 찰 때도 있고요. 저는 늘 밝음을 보려 하는데 그것이 저를 지탱해주는 힘이기도 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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