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3에 올라와 딸아이는 시험지에 쫘악쫘악 그어져있는 빨간색을 보며 깊은 한숨이 잦아졌다.
동그라미만 세상에 있으라는 법은 없지만, 시험지에 동그라미외에 다른 도형이 등장하면 나또한 유치한 엄마로 변한다. 엄마가 얼마나 할말이 없으면, 대화할줄 모르면, 할줄아는게 없으면, 보고 들어본 애기가 없으면 자녀에게 공부하란 소리를 할까 하며 깊은 내공을 수없이 쌓고 쌓아보지만, 책가방속에는 아이의 꿈을 접은 색종이보다 오답노트들이 쌓여가는 것을 바라보는 마음또한 편하지않다. 내가 너를 어떻게 얻었는데...
대학때 생전 도서관문 근처에는 가보지도 않았고 가볼 생각도 않했을 정도로 무식하게 하루하루를 공부와 담쌓고 지내다가 실수로 다른 교실문인줄알고 들어간 곳이 도서관이였다. 한두명, 두세명 아니 고개를 쭈욱 돌리지 않아 내 시야에는 몇 학생정도였다. 순간, 진짜로 빛이 한 남자한테로 둘러싸이더니 도서관 전체가 찬란한 무색의 뭔가로 번쩍번쩍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누군가 꼭 밝혀줬으면 한다)
그 남자는 몇번 본 과친군데 한번도 빛은 커녕 눈에 띄는 사람도 아니였고 게다가 복학생이여서 늙어보이기까지 했으니 찬란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도 그날, 그장소에서는 뭔가 뒤집힌 것이다.
만난지 며칠만에 나는 키스를 했고 그는 첫키스를 당했다. 기도했단다. 나와 헤어지게 해달라고, 동시에 난, 그와 잘 지내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아마도) 동시에 뭔 기도를 했을지라도 우리는 사랑했고 사랑했고 사랑했다. 집과 도서관밖에 모르는 남자는 나를 만나 무명천지에 이런 날라리같은 곳이 다 있나 하며 세상을 경험했고, 집외에는 다 놀이터라고 생각하는 나는 그를 만나 진지함과 교양(?)을 두루두루 구경했다.
수십번의 헤어짐과 수천번의 싸움과 수만번의 번복된 사랑이 있었다. 마지막 그와 헤어질때 난 상사병에 걸렸다. 한의원에서 상사병이라고 하니 알았지 정말 사랑하다 죽었노라라는 병명이 딱어울렸다.
이불속에서 입술을 깨물며 얼마나 기도했던가!
한번 그를 만나서 그의 손을 만질수만 있다면 제 모든것을 바치겠다고,
한번 그를 만나 입술에 키스할수 있는 마지막 헤어짐을 주신다면 주님께 다드리겠다고...
별별 간사하고 저질스런 기도문을 매일매일 하고 또 했다.
바램이 죄가 될까 ...어떠한 바램도 없이 그의 존재만으로 숨을 쉴수 있었다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존재의 귀중함은 내 가슴 아주 저 깊은 곳에 아주 쪼끄만 방에 숨어서 가끔 보여준다. 오늘같은 날에...
그 남자와 결혼해서 낳은 딸이 아인이다. 딸아이가 어떤 존재인지를 항상 느끼며 살아야 하는데 현실은 아주 가끔씩만 그날의 순수함을 꺼내보여준다.
넌 바램이 죄가 되는 바로 그런 존재인것을,
어떻게 네 아빠와 다시 만났고, 어떻게 네가 나한테로 왔음을 분명이 보여준 그 사랑의 결정체인데
내가 네게 바램이 있다는게... 가끔 눈물이 난다.
아직도 보여주고 들려줄 세상이 너무 아름다운데 내가 너무 어둡고 칙칙한 어른이어서 그게 미안하다.
시험지위에 고개를 숙이고 하루에도 책봐라 하며 입에서 나오는 소리들이 미안하다.
고개들어 하늘좀 봐아~ 하며 같이 음악들으며 너도 나도 아름다움을 느끼며 살게 해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하다.
아빠와 키스를 나누었을때 넌 어는 별에서 기다렸겠지, 저 두사람에게 내가 달려가겠다고...
고마움을 표시하며 살아도 모자란 세상에 바램을 하고 있는 이 엄마가...미안하다.
음악듣다가 반성문 올립니다.


쑥쑥몰
체험이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