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하는 한 외국인이 어느 일간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방송에서는 하지 못한 “뒷담화”를 소개했습니다. 한국에 온지 몇 해 되지 않은 그 여성은 그 짧은 기간 동안 발견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더군요. 그 가운데, 아이들을 상대로 영어 과외를 하면서 들여다본 한국의 가정에는 아버지가 존재하지 않으며 그 때문에 아이들이 정신적으로, 도덕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하기 힘들어진다는 지적에 가뜩이나 주눅든 이 땅의 아버지들은 또 한 번 가슴이 철렁합니다.
굳이 그녀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허용과 금지의 합리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아버지의 권위와 함께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을 체험하지 못한 아이들이 바르게 크지 못하는 것을 흔히 봅니다. 이제는 여든을 목전에 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하고 출연했던 영화 <퍼펙트 월드>(1993)는 다소 폭력적 장면과 착잡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 가정에서 아버지의 부재가 아이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 가를 절실하게 느끼게 해주는 좋은 가족 영화입니다.
1960년대 초 미국 텍사스가 배경인 이 영화는 탈옥수 버치(케빈 코스트너)와 그에게 우연히 인질로 잡힌 여덟 살짜리 어린 소년 필립, 그리고 이들을 쫓는 경찰 레드(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주목할 것은 버치가 필립을 인질로 삼고 경찰의 추격을 받는 동안,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사랑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이 두 사람이 단순히 탈주범과 인질이 아닌, 보기 좋은 부자의 관계로 발전해 간다는 사실입니다.
건달이던 아버지가 집을 나가버리자 버치는 창녀인 어머니와 함께 살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었습니다. 불과 여덟 살 나이에 버치는 어머니를 괴롭힌 남자를 총으로 쏘아 죽였는데, 그 남자가 현상수배범이라는 이유로 처벌을 면합니다. 아버지로부터의 규율이나 사랑을 전혀 경험하지 못한 버치가 범죄의 유혹에 쉽게 빠져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죠. 십대 초반에 남의 차를 훔친 죄목으로 소년원으로 보내질 상황에 처했을 때 버치는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어린 나이에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죄여서 보호자의 책임 하에 처벌을 면할 수도 있었지만, 당시에 보안관이던 레드는 버치를 아버지에게 맡길 경우 더욱 문제아로 자라날 것으로 확신하고 그를 소년원으로 보냅니다. 결과적으로 버치가 그곳에서 범죄를 익혀 훗날 교도소를 들락거리게 됨으로써 레드의 판단은 틀린 셈이 되버립니다. 영화의 끝에서 버치가 경찰이 쏜 총에 숨을 거두자, 그를 살리려고 애쓰던 레드가 뱉어낸 "뭐가 뭔지 모르겠어(I don't know nothing.)라는 투박한 말 속에는 오래 전 자신이 내린 결정에 대한 낭패감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버치의 비극적 삶의 씨앗은 근본적으로 누구보다도 그의 아버지가 뿌렸다고 보아야 합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버치는 마찬가지로 아버지로부터의 사랑에 굶주린 필립에게 어설프게나마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대신합니다. 훔친 차를 타고 도주하는 동안 버치는 필립에게 옷을 사 입히고, 말벗이 되어주며, 할로윈이 지났지만 유령복장을 하고 사탕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윽고 이들은 위태롭기는 하지만 실제 아버지와 아들이 연출해 낼 수 있는, 제목처럼 '완벽한 세상'의 비전을 잠시나마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러나 여섯 살짜리 손자에게 손찌검을 하는 흑인 농부를 밧줄로 묶은 채 살해하려던 버치를 향해 필립이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그 완벽한 세상은 신기루처럼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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