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은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애타게? 기다렸던 봄이다.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결정하고 간만에 찾아온 자유를 맘껏 느끼는 첫 계절이기 때문이다. 세돌이 채 않된 딸을 노란색버스에 태워보내고 늘어지게 컴터앞에앉아, 다방커피 쭈욱 들이키는 이 장면을 얼마나 되찾고 싶었던가.
자유를 갖고 느끼면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는 것을 자식을 키우면서 알게됬다.
굳이 결혼이 처녀적 여성의 성 속박에서 자유로운 합법적 성거래를 자유화? 한다는 자해석을 늘어놓지않아도 자식이 주는 속박과 오늘의, 지금의 자유시간은 나로하여금 이렇게 재해석을 하게됬다.
먹지않아도 배부른것,
차려입지않아도 궁색하지 않은것,
놀아줄 사람이 옆에 없어도 나하나만으로 가득한 기운, 이것이 내가 말하는 자유다.
자유를 말함에 있어서는 각자 생각이 달라서 어떤게 더 가치있다라고 순서세우기는 뭣하다.
암튼, 난 너무 좋다. 한편,
자유를 품은 여자에서 엄마가 되는 순간이있다. 그래서 엄마는 자유부인?이 될수는 없다. 간간이 맛보는 틈새자유는 허해도 완전하게는 힘들다.
왜이래 아마추어같이? 이유는 이렇다. 이 시대 엄마가 아마추어 자유부인일수 밖에 없는 이유....
자녀에게는 틈새의 틈새라도 자유를 주면 불안하다. 아니, 자유롭게 한가로이 있는 꼴을 못본다.
문제풀다 멍한 장면을 포착하면 속에서 부글부글 끊는다
밥먹으리고 몇번을 얘기했는데 그때서야 일어나서 몇신지 확인한다, 열불난다
학교같다와서 학원가야할 시간에 방바닥에 늘어져서 멍하니 천정을 본다, 신애리보다 목청높여 소리친다
간식을 맨날 찾고 항상 굶주린 사자처럼 자기주도적 음식찾기에 맹활약한다, 먹는것처럼 공부좀 하지하고 모멸감 팍팍준다
문제를 풀고 자신의 점수에 그리 흥분하지 않는다, 어째 애가 의지가 없을까 하며 유전가 한탄들어간다.
몇살아래 동생과 놀면 제가 정신이 있나없다 아예 각자 방에 가둬둔다
.......
대한민국 엄마는 자녀가 심심해하는 표정을 짓고 뒹굴뒹굴하면 왜 불안하고 소리지르고 열불나고 심지어는 두려움까지 느끼는가...(너무 비약해서 욕먹을 각오한다)
스스로 자유로움을 많이 갖지 못하고 살았고 기다림에 대한 성공적 경험을 해보지 못한, 한마디로 느림 면역 결핍이다. 느려지면 그것이 곧 실패라고 공식화해버려서 자신도 어느새 빠른쪽에 줄서서 그것이 올바른 길인냥 각인된거이다.
창피한 고백을 한다. 중학교때 문제집에 나온 문제를 풀다 8시간 넘게 걸린적이있다. 어쩌면 그게 기억이 8시간이지 하루를 넘긴것도 같다. 오빠 둘에 딸이 하나여서 그런지, 엄마는 그 자체를 답답해 하시지않고 오히려 기특하게 생각하셨다. 오빠한테 물어봐라, 빨리 다른것도 해야하는데 이렇게 한문제가지고 질질끌면 어떻하냐, 일단 답을 봐라...어떠한 코멘트도 없었다. 네살 위인 작은 오빠는 엄청난 말로 날 지금의 수학 사랑 주부로 만들었다.
절대 수학을 젤로 친한 친구한테 물어보지마라, 알았지?
왜?
그럼 수학이 질투한다. 수학은 너랑만 놀고싶은데 친구하고 나누면 수학이 숨어버려
잉? 뭐야?
알았지? 수학은 너 방에서 꼭꼭 숨겨서 몰래 풀어...
다소 오빠의 말이 우스웠지만 왠일인지 그 뒤로는 선생님한테도 질문을 않했던것 같다. 이것때문에 어쩜 8시간넘게 문제하나를 두고 씨름한것도 같다. 좋아한다고 해서 잘하는건 아니지만, 수학에 대한 사랑의 계기가 되었다.
머리가 나쁘니까 자유하게 하는 시간만큼은 남들보다 배가 많아야 문제해결을 봤다.
그때 느꼈던 공기의 흐름까지도 난 생생하게 기억한다. 풀어냈을때의 그 맛, 사실, 자유하게 함이 공부의 최고의 맛선생이라고 말하고싶다.
뒹굴게 하면서, 실수하면서, 드러냄이 아닌 숨어보면서 하는 자유함을 오늘 반성문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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