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제자가 찾아왔었습니다.
6월5일에 입대한다고 하더군요. 얼굴에 근심이 가득...
이 아이(?)가 중3 때 제가 종합학원 강사였습니다. 그 때 제가 담임 맡았던 반 아이였어요.
근데, 고 2 때 학교를 자퇴 하더군요. 자퇴 사유는, "내신" 이었습니다.
지금은 평준화가 되었지만 그 당시엔 비평준이었는데, 그 아이는 중위권 고교에 다니고 있었어요. 내신이 좋지 않으니 법대를 진학하기 힘들겠다는 아버님 판단에 따랐답니다.
어찌어찌 말릴 틈도 없이 자퇴를 하고선 나중에 검정고시 학원 다닌다고 인사를 왔더군요.
좀 의외였지만, 이미 엎지러진 일이었고...집에서 거는 기대가 큰가부다 했었죠.
그리고, 검정고시로 내신은 1등급을 받았는데 수능 성적이 나오지 않았답니다.
성실한 편이니 노량진 등의 유명 재수생 학원에서 열심히 수업을 받았던 것 같아요.
수능 보기 전날, "평소 모의고사에서 수리는 만점을 받았어요. 내일도 만점 받고 전화드릴께요."
하고선, 시험을 치룬 이후엔 전화가 없더군요.
그리고 그 다음해 11월 초에 또 같은 내용의 전화를 하고, 그 다음 날 부터는 전화가 없고...
결국 4 수 끝에 법대를 갔습니다. 원하는 대학은 아니었지만, 나이 때문에 5수를 할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제 그 아이는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저를 봐도 좀 한심한데요...입대를 앞두고 있는 상황인데, 군대 생활이 걱정 되는 게 아니라 제대한 후가 더 걱정되요.
제 나이가 스물 다섯이거든요?
제대하면 스물일곱. 학교를 2년 더 다녀야 하고, 그리고 나면 29세. 그때는 취업을 해야할텐데...
사법고시를 볼 생각은 없으니 이 대학을 계속 다닐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선생님, 제가 무얼 할 수 있을까요?
선생님이 보기에 제 적성은 무엇인 것 같으세요?
객관적으로 제게 조언해 주실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찾아 왔습니다. (정말 멀리서 찾아왔어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네가 좋아하는 걸 해라."에요. 그런 말 들으면 정말 황당해요.
자기가 좋아하는 게 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제가 좋아하는 일이 뭔지 모른다는 게 가장 큰 문제인데, 사람들은 저보고 맨날 제가 좋아하는 걸 하라고 해요...너무 황당하잖아요?
저는 정말 제가 뭘 좋아하는 지 모르겠어요. 25살이나 먹어가지고, 이런 말 한다는 게 부끄럽기도 하고...
돌아보면 제가 주체적으로 산 적은 없는 것 같아요. 그동안 저는 그냥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살았던 것 같고, 지금 몹시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이 들어요.
4수까지 해서 선택한 학교인데, 여긴 아닌 것 같아요. 한의학과 시험 준비를 다시 해 볼까요?
제가 사회에 나와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돈을 벌죠? 저는 돈을 많이 벌고 싶어요....근데, 직업은 어떤 어떤 게 있는 지, 어떻게 해야 돈을 벌지...전혀 모르겠어요.
앞으로 유망한 직종은 무엇일까요?"
입대를 앞두고 마음이 불안한 걸까...싶더군요.
교사이신 아버님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너무 싸서 키우신게 아닌가...싶구요.
"유망한 직업이 따로 있겠니? 너한테 맞는 직업을 찾아서 열심히 노력하면 그게 유망한 거지...
일단 군대에 가 있는 2년 동안 네 자신을 샅샅이 돌아보도록 해. 네가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 네가 바라는 게 무엇인지...잘 들여다 봐.
그리고, 이 학교를 중도에 그만두는 것은 난 절대 반대한다.
한의학과는 너의 대안이 될 수 없어. 그런 식으로 피하지 말기를 바란다.
고등학교 중퇴, 게다가 대학도 다니다 만다면, 그것은 네가 인내심이 없는 사람이라는 걸 모든이에게 증명할 뿐이야.
한의학과를 갈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지만, 만약 간다고 해도 더 나아지는 것은 없을 거다.
...나약하게 생각하지 말아라. 25살은 결코 늦은 나이가 아니야.
만약 네가 지금 하는 고민을 군대 제대 후에, 대학 졸업하고, 그리고 2,3년의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32,33세에 한다고 생각해 봐. 그 나이가 되서야 한다면, 정말 늦겠지. 하지만 지금 이런 고민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너는 네 인생을 계획하고 충분히 리드할 수 있어.
돈을 벌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하지 말고, 네가 잘 하는 게 뭔지 찬찬히 오랫동안 생각해 봐. 자꾸자꾸 생각하면, 그러면 보일거야.
그리고 네가 꿈꾸는 곳에 한 단번에 오르려고 하지 말고 한 계단, 한 계단, 스텝을 정해.
하나씩 하나씩 올라가면 10년 후에 네 목표에 다다를 수도 있어. 하지만 구체적인 목표없이 막연히 성공을 바라기만 한다면, 10년 후에도 하나도 나아지는 것 없이 제자리만 맴돌고 있게 될거야.
스물 다섯. 결코 늦은 나이가 아니야...."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여전히 15살 아이처럼 방황하는 25살 청춘.
이 땅에 오직 이 아이 하나 뿐은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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