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교수라고 혹시 들어보셨는지요?
제가 베를린에서 공부할 때 이 분도 베를린에서 공부했습니다. 저와 친분은 전혀 없습니다. 저는 좀 보수적인 유학생들과 친분이 있었고 진중권교수(중앙대)는 진보적 유학생들과 교류하다 보니 서로 만날 기회가 없었죠. 딱 한번 슈타비(국립도서관)에서 우연히 커피 한잔 같이 마신 것이 인연의 전부네요.
그런데 이 분 요즘 대한민국 정치판을 온통 휘젓고 있습니다. 진보적인 사람들에게는 엄청나게 환호 받고 보수적인 분들에게는 공공의 적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진보인사라 할 수 있습니다. 이론적으로 무장이 아주 잘 되어있습니다.
제가 좀 시건방져서 그런지 몰라도 살아오며 만나본 설대출신 중에 진짜 똑똑하다고 느낀 사람 몇 없었습니다. 언론을 통해 접한 설대들도 대단하다고 느낀 경우보다 한심하다고 느낀 사람이 더 많았습니다. 제가 인정하는 설대 출신이 몇 있는데 그 중 한사람이 진교수입니다. 설대 미학과 출신인데 대단해요. 천재끼가 있습니다.
정치적 성향은 저와 완전히 다릅니다. 이 게시판에서 많은 분이 저를 진보적으로 보셨을 것같습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강조하는 제1 덕목은 성실입니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최선을 다하고 성실한 삶의 자세를 유지하면 누구나 인생을 성공적으로 꾸려나갈 수 있다고 아이들에게 말해줍니다. 창의성도 성실해야 가능한 것이지 불성실하고 게을러서는 절대 창의적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능력있는 사람은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회를 유지하는 기본틀은 시장경제의 원칙이어야 합니다.
성실, 능력에 따른 대우, 시장경제. 이 세가지를 기본 틀로 생각하는 사람은 분명 보수이며 우파입니다. 저는 분명 중도 보수인데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한국식 보수이다 보니 저를 진보 또는 좌파라고 봐요. 진짜 진보가 웃을 일이죠.
이야기가 조금 옆길로 갔네요. 진교수와 저는 이념상 분명 다른 지점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교육감선거에는 진교수와 제가 같은 쪽에 서 있군요. 한국사회에서나 발생하는 코메디 같은 상황입니다.
프레시안이라는 인터넷 진보매체에 진교수가 쓴 글이 있기에 퍼왔습니다.
이 글은 교육에 관한 내용입니다. 대통령에 대한 강한 비판을 포함하고 있어서 여러분들께서 어떻게 느끼실 지 모르겠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서양사회에서는, 특히 유럽에서는 서로가 서로에 대한 비판내지는 비판적 질문이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특히 정치인에 대한 비판은 정말 신랄합니다. 그래도 일정한 선은 있어야겠지요. 예전에 노무현 대통령의 이마를 정조준하는 페러디 삽화가 뉴라이트 사이트에 올라 온 적이 있었습니다. 정치적 성향을 떠나 대통령을 저격하는 모습을 그린다는 게 참 끔찍스럽더군요. 그 정도면 너무 과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민주주의 사회에서 공권력을 동원해서 제재할 수는 없었기에 넘어갔습니다.
이명박 정부를 지지하시는 분들이나 연세 드신 분들께 아래에 제가 퍼온 글은 별로 유쾌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냥 귀엽게 봐주시고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비판에 지나치게 예민하지 않는 것, 비판을 받았을 때 자신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것, 21세기 민주사회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덕목입니다.
이 게시판에 오시는 쑥맘님들의 생각과 다르다고 이 글을 내쫓아버리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이 글이 게시판의 성격과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이 꼭 여기에 속하냐 아니냐를 매번 엄격하게 따지지 않습니다. 초등영어게시판에 적합한 글이 중등게시판에 올라온 경우는 아주 많습니다.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너무 엄격하지 않는 지금의 상태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우리 모두 다 자유를 최대한 즐길 수 있습니다. 관용이지요. 지나치지 않으면 서로 인상 쓰지 않으며 살아갑니다. 규칙위반이 너무 심해지는 단계에 이르면 규칙을 지키도록 경고하고 그래도 어기면 강력히 제재해야 합니다. 아이들 기르는 것도 동일한 원칙입니다. 자유를 주되 큰 틀에서 규칙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지 살피고, 의도적으로 규칙을 자주 어기면 경고와 더불어 제재도 해야 합니다.
제가 퍼온 아래 글의 핵심내용은 분명 교육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어떤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가가 이 글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중등게시판에 올립니다. 교육과 연관된 아주 날카로운 내용이어서 쑥맘님들께 도움이 되겠다 생각했습니다. 꼭 소개해 드리고 싶어서 퍼 왔습니다. 앞 부분과 마무리의 정치적 비꼼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왼쪽 눈으로만 읽으시며 대충 넘어가시구요. 교육과 연관된 핵심부분(중간에 있습니다)은 꼼꼼히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이 글 귀양보내지 마시라고 길게 읍소를 드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양 보내시면 무척 슬프겠지만 달게 받아들이겠습니다. 귀양보내는 게 정당하냐 아니냐 따지지 않겠습니다. 운영자님과 쑥쑥 맘님들의 선처를 바랍니다. 길어졌네요. 변사는 물러나고 막이 오릅니다.
진중권>
한여름이라 그런가? 납량특집이 유행이다. YTN 낙하산 인사, KBS 사장 퇴진 압력, MBC에 대한 공격. 촛불민심을 만들어낸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대한 온갖 규제들. 노골적으로 정권의 충견으로 나선 경찰과 검찰은 촛불을 물어뜯는 데에 여념이 없다. 임기 초에 지지율 20% 초반이면 사실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정권. 무덤에 누워 반성해야 할 이 좀비가 다수의석이라는 형식적 권력에 기대어 도처에서 산 사람들을 공격하며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좀비의 이 주제넘음은 물론 다음 총선과 대선까지는 앞으로 4~5년이나 남았다는 여유에서 나온다. 한 마디로 '너희들이 아무리 끓어봤자 4~5년 동안은 합법적으로 우리를 몰아낼 방법이 없다'는 자신감이다. 그래선지 최근 촛불에 대한 정권의 전방위적 압력은 실로 극한을 향해 치닫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 강압적 통치가 그들을 구원해줄 것 같지는 않다. 시대착오적 억압은 시민들 마음속에 고스란히 스트레스로 쌓여, 또 다른 분출의 순간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듣자 하니 싱가포르에서 또 다시 외교적 해프닝을 연출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뺨 맞고, 중국에게 침 맞고, 일본에게 뒤통수 맞다가 이제는 북한에게마저 절절매는 신세가 된 무능한 정권. 이 '글로벌 호구'가 제 국민을 향해서만은 왜 이리 기세등등하게 서슬이 퍼런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황당한 상황에 긍정적 측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반 년 간 이명박 정권은 '선거 잘못 하면 나라가 어떤 꼴이 되고, 시민이 어떤 신세가 되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계몽적 역할을 충실히 해오지 않았던가.
▲ ⓒ프레시안 |
밥 좀 먹자, 잠 좀 자자
선거 다시 하려면 4~5년을 기다려야 하는 촛불시민들에게, 이번 서울시 교육감 선거는 놓쳐서는 안 될 기회로 여겨지는 모양이다. 돌이켜보건대 촛불과 교육의 문제는 사실 애초부터 서로 맞붙어 있었다. 처음 거리로 나온 촛불소녀들의 피켓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밥 좀 먹자. 잠 좀 자자." 여기서 '밥 좀 먹자'는 구호는 미국산 쇠고기 급식에 대한 두려움을, 그리고 '잠 좀 자자'는 구호는 이명박 정권의 교육정책 앞에서 중고생들의 신체가 느낀 위협을 표현한 것일 게다.
"학생들이 공부하다 과로해서 죽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한나라당 소속으로 서울시의회에서 교육문화위원장을 하는 분은 얼마 전 이 가공할 망언으로 MB식 교육철학의 정수를 보여준 바 있다. "저소득층이 늘어나면 교육의 질이 떨어진다." 강남에 임대아파트 짓지 말라고 서울시에 공문을 보낸 서울시교육청의 행각은 MB식 교육철학의 또 다른 기둥이다. 이게 과연 제 정신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얘기인가? 이러니 '미친 교육'이란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촛불은 처음부터 이 병든 교육에 대한 거부이기도 했다.
투표권도 없는 내가 주경복 후보 지지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은, 주 후보야말로 이 촛불의 정신을 대변하는 후보라고 믿기 때문이다. 투표율이 낮은 선거에서는 늘 조직력과 동원력을 갖춘 보수층이 쉽게 승리해 왔고, 이번 선거 역시 유감스럽게도 투표율이 그리 높을 것 같지는 않다. 이렇게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촛불후보가 기어이 승리를 한다면, 그것은 '촛불 민심이 이명박 정권의 미친 교육을 심판했다'는 확실한 사인이 될 것이다. 나는 그것이 정권으로부터 공격당하고 모욕당하는 촛불을 지키는 길이라 믿는다.
과거의 경쟁력
하지만 주경복 후보를 지지하는 데에는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다. 그것은 한국 교육의 경쟁력을 위해서다. MB의 교육철학을 공유하는 이들은 저마다 입으로 교육의 '경쟁력'을 외친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경쟁력은 미래형이 아니라 과거형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 그들의 게을러서 굳어버린 돌머리는 경쟁력마저도 70년대식으로 이해를 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우리는 70년대가 아니라 21세기에 살고 있다. 필요한 것은 미련하게 애들 잠 안 재우는 경쟁, 부모들이 벌이는 소모적인 소득수준의 경쟁이 아니다. 미래형 경쟁은 창의성과 상상력의 경쟁이다.
경쟁력을 떠든다고 경쟁력이 생긴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기억하는가? 대통령 이명박씨는 "국내에 나의 경쟁자는 없다"며, 자기 상대는 미국의 부시, 러시아의 푸틴이라고 얘기했다. 그렇게 말하던 그의 국제경쟁력은 어느 수준이던가. 한 마디로 글로벌 호구가 아니던가. 하루에 네 시간 밖에 안 잔다고 자랑하는 게 MB 정권에서 생각하는 경쟁력이다. 생산력의 발전이 노동력의 단순투입만으로 이루어지던 70년대 초의 마인드. 그런 구식 경쟁력으로 세계로 나갔다가는 외교에 이어 경제에서도 글로벌 호구가 될 뿐이다.
미래의 경쟁력
후진국의 산업화는 대개 선진국에서 기계를 들여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러다가 조금 발전하면 기계를 스스로 만들기 시작한다. 그때 쯤 선진국은 기계를 디자인만 하고 있을 게다. 개도국이 기계의 설계에 뛰어들 때쯤이면, 선진국은 원천기술의 개발을 인도나 중국과 같은 개도국에 떠넘긴 채 기술 경영만 할 것이다. 한 마디로 창의성 없는 기술은 급속하게 단순한 기능으로 전락해가고 있다. 진정한 의미의 교육 경쟁력이란 바로 이런 시대 흐름에 부합하는 창의적 인력을 양성하는 데에서 나오는 것이다.
MB노믹스의 한계는 곧 MB식 교육의 한계다. MB와 철학을 공유하는 후보들은 저마다 '경쟁력'을 떠든다. 하지만 그 '경쟁력'의 실체가 무엇인지 뜯어보면, 산업화 초기 단계의 마인드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문제 푸는 능력'과 '문제 해결 능력'은 다르다. 문제 푸는 능력은 결국 알고리즘에 익숙해지는 문제다. (사교육의 본질은 바로 그 알고리즘을 상품으로 제공해주는 데에 있다.) 반면, 문제 해결 능력은 그것과는 차원이 달라, 무엇보다 학생 스스로 자료를 검색하여 솔루션을 모색하는 주체성을 요구한다.
나아가 문제 해결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게 문제 제기 능력이다. 이미 던져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쉬운 일이다. 진정으로 어려운 것은 아직 제기 된 적이 없는 새로운 문제를 던지는 것. 이는 최고의 창의성을 요구한다. 이미 세계 경제는 이런 종류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MB주의자들이 떠드는 경쟁력이 어디 이런 것을 말하던가? 하루에 네 시간 밖에 안 자는 대통령. 이게 저들이 생각하는 교육의 모범이자 이상이다. 하루에 네 시간 밖에 안 자는 것은 부지런한 게 아니라, 그냥 미련한 것이다.
경쟁과 협력
주경복 후보는 공약으로 핀란드식 교육을 얘기한다. 세계 최고의 교육경쟁력을 자랑한다는 핀란드. 이 나라의 운영원리는 거의 모든 면에서 MB이념과는 대극을 이룬다. 노무현 정권마저 '좌파'라 부르는 가재미들의 눈에 핀란드와 같은 북구 사회는 아마 극좌 공산주의 사회처럼 보일 것이다. 핀란드의 고교내신은 달랑 '잘 함', '중간', '못함'의 세 등급으로 이루어졌다고 들었다. 소수점 아랫자리까지 따져가며 학생들 줄 세우는 것으로도 모자라 아예 중고등학교까지 성적 별로 서열화하는 게 교육경쟁력의 요체라 믿는 이들은 아마 이게 이해가 안 될 것이다.
가장 사회주의적인 나라가 동시에 가장 높은 자본주의적 경쟁력을 갖추었다. 이 사실이 미래를 헤칠 머리가 없어 과거에 집착하는 굳은 머리로는 도저히 납득이 안 될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상상력의 한계다. 자본주의적 생산도 어차피 사회적 생산, 그것도 거대한 사회적 협업의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한 사회의 경쟁력은 바로 이 협업이 얼마나 효율적이며 창의적으로 이루어지는지에 달려 있다. 교육의 이념도 바로 이 명백한 사실의 인정에서 출발해야 한다. 친구를 밟아야 내가 생존하는 소모적 경쟁은 반(反)사회적인 것이다.
'한 사람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 미학에서도 이미 100년 전에 포기한 낭만주의적 천재론이 한국에서는 경제학의 행세를 한다. 대통령이 CEO를 하고, 전 국민이 그의 수족이 되어 움직이면 경제가 성장한다는 전근대적 미신이 한국에서는 버젓이 경영학의 행세를 한다. 한 사회의 경쟁력은 자신을 천재 혹은 엘리트라 믿는 과대망상증 환자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게 아니라, 경제 주체 하나 하나의 능력, 그것들의 효율적 결합, 그 결합이 만들어내는 전체적 창발 효과에 달려 있다. 교육의 이념은 이 상식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내 안의 MB
마지막으로 남을 탓하기 전에 우리가 반성해야 할 게 있다. MB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것은 사실 우리들 내면의 명박스러움이었다는 점이다. '경제만 성장시켜 준다면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다'는 게 지난 대선의 표심이 아니었던가. 교육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MB식 교육정책을 낳은 것 역시 우리들 내면의 명박스러움이었다. 요란하게 사교육을 탓하는 학부모들에게 솔직하게 물어 보자.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되든 내 아이만 잘 가르치면 된다.' 아니, '다른 아이들이 못할수록 내 아이에게는 유리하다.' 솔직히 당신들 스스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다른 아이야 어떻게 되든 내 아이의 점수만 높이면 된다.' 이것이 사교육을 성행하게 만드는 우리 내면의 명박스러움이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얼마나 효율적일까? 애들은 애들대로 고생하고, 부모는 부모대로 허리가 휘고, 교육은 교육대로 망가질 뿐. 진정으로 공교육을 살리고 싶다면, 우리 내면의 명박스러움부터 척결해야 한다. '우리 아이들, 우리가 함께 잘 가르쳐서, 나중에 그 결실을 함께 나누자.' 이것이 바로 우리가 되찾아야 할 공교육의 이념이다. 정의로운 것이야말로 효율적인 것이다.
내가 주경복 후보를 지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와 관련이 있다. 나는 그의 당선이 한국의 교육현실을 일거에 바꾸어 놓을 거라 믿지는 않는다. 다만 그의 당선이 이런 사회적 인식의 전환을 위한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믿을 뿐이다. 진정한 승리는 그저 특정 후보를 교육감으로 당선시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결국 괴물 정권과 괴물 정책을 출산한 우리 내면의 괴물을 반성하고 척결하는 것.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선거는 우리 내면의 명박스러움을 태워 없애는 또 하나의 촛불집회, 즉 정신적 성숙과 정화의 의식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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