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난 엄마가 키우는 못난 아이?
제목이 좀 그렇나요?
그러나 모든 부분에서 이것은 공식처럼
들어맞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똑똑한 부모를 만나면 자녀들이 똘똘하게 자라날 것
같지만 역의 현상으로 쓰라림이 자리합니다.
그 쓰라림 속에 차지하고 앉는 그 공허함은 어쩐다지요?
자녀에 대한 기대도 무너지고 무엇이 잘못된건지
혼란스럽기까지 하는데 내 반쪽이라도 기대보면 좋겠구만
그러나 아내가 힘들어하고 이해되지 않는 혼란속에 빠져있을 때
대부분 남편들도 함께 그 상태에 있답니다.
반쪽이니까 나와 똑같은 상황속에 놓이지 않을까요?
그렇지만요.... 잘나고 똑똑한 부모들이 자녀들을 키우며 교육하기가
훨씬 유리합니다. 아는만큼 보이니까요.
여기에 다른 평범한 부모들이 가지지 않은 독소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의 모습과 능력과 생각까지 제단할 수 있는 속성을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많이 알고 있는 부모 자신에게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되지 않을까요?
평범한 부모들의 실수는 삶에서 전해지는 아픔일 경우가 많지요.
부모들은 가슴아파 하지만 의외로 자녀들은 그 계기로 더욱 성숙해지기도 합니다.
영어 이야기 하나 하겠어요.
우리 부모들은 대부분이 문자 세대라 sound에 민감하지가 않습니다.
또한 파닉스의 법칙도 알지 못하고 단어 외우며 블랙 페이퍼를 만들었답니다.
테잎을 듣고 동화책을 읽고 원어방송 바로 시청하고...... 좋은 비법들이 이미
오픈되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재단하고 있지 않을까요? 좋다고 하는 것이
부모들의 관점화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뉴스채널 샤프한 전달력 보다
명작의 온 몸을 전율케 하는 문장은 어떤 전달력 보다 강력한것 아닐까요?
우리 부모들도 수준이 모두 높아졌습니다. 그래서 자녀에 대한 판단을 너무 빨리
하는 오류에 빠질까? 항상 자신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엄마표로 성실하게, 끈임없이 배워가며 자녀들에게 도움을 주는 분들.
가르치려 들지 마시고 도움주는 것을 계속하셨으면 합니다.
파닉스의 기법은 두뇌가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소리를 발성기관을
통해서 나왔을 땐 두뇌가 이미 신체 기관의 도움을 받아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니 너무 뇌의 기능이라 생각하지 마시고 지능이라 더더욱 생각치 마세요.
파닉스 기법을 이해되면 우리 언어와 일대일 대응의 연관성을 감각적으로 이해하는데
우리 소리와는 정확히 다르다는 것만큼은 확실합니다. 우리 신체의 발성기관을 통해서
영어소리로 이해도 습득도 아닌 체득화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일사천리로 갈 수 있는 비법은 소리노출이며 아이들은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체득화함을 알게 되어 놀랄것입니다. 그렇게 놀라고 기특해하면서 가시면 어떨까요?
여기서 또한 부모님들이 실수를 하게 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아이가 잘 하는것 같으니 정보라는 것을 모아보는 거죠. 인위적으로.....
아이를 중심에 두지 않고 본인이 들이밀게 됩니다. 이런 경험들이 있으신 분들
전에 없던 자녀와의 막힘에 분통이 터뜨린 분도 있을겁니다. 스스로 만들었는데도...
나는 부모입니다. 제 옆에는 아직 어린 자녀가 그래도 자신들의 주장을 펴며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땐 고집을 동원하기도 합니다.
나는 그 아이를 누를 수 있습니다. 아직은 부모의 권위도 통하는 연령때고
소리치며 훈계하거나 매를 들어도 됩니다. 그것에 대한 정당성은 어린 자녀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나이기에 그들을 더 잘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알고 있다고 하는 것은 백지 한장차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깨닫게 되는 나이는 되었나 봅니다. 알고 있는 것을 가르치기보다
그들을 의견을 존중하고 내 속에 잘난맛을 조금 다스렸을 뿐인데도 자녀들은
더없는 온순한 양이 되더군요. 정말 이쁜 내 자녀로 품에 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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