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열아홉 살 때 치른 시험 한 번으로 사람의 등급을 돌이킬 수 없이 규정해버리는 학벌체제가 개인과 사회, 그리고 교육을 망가뜨리고 있다는 우려가 높아가고 있다. 지난해 8월 시민단체 ‘입시폐지-대학평준화 국민운동본부’ 준비모임 회원들이 서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 |
| | | 식민화 복무 엘리트 양성교육 서울대 중심 서열화로 이행 유일한 치료법은 대학평준화 ‘정부 수립 60년, 병리현상의 역사’.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이사장 조광)이 발행하는 <내일을 여는 역사>(서해문집 펴냄) 2008년 봄호(31호) 특집 제목이다. 이 특집에 포함된 ‘학벌, 근대적 개인에게 안기는 봉건적 낙인’이란 글에서 정진상 경상대 교수(사회학)는 학벌이 봉건사회 신분보다 더 가혹한 ‘봉건적 낙인’이라고 규정했다. 봉건적 신분은 세습되는 데 비해 학벌은 후천적으로 취득된다는 점에서 학벌이 더 공정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학벌주의는 바로 그 ‘공정성’으로 인해 그 정당성을 ‘내면화’하기 때문에 더 나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불공정성이 밖으로 드러나는 봉건적 신분질서는 하층신분의 거부와 반란으로 결국 폐지될 수밖에 없었으나, 외견상 ‘공정한 시험’이라는 취득절차를 거치는 학벌은 12년간에 걸친 입시교육을 통해 극소수 ‘우등생’의 우월감과 자기도취, 대다수의 열패감을 지속적으로 내면화하는 훈련이 이뤄지기 때문에 반란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봉건사회 신분해방과 같은 방식으로 지금의 학벌해방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정 교수는 지적했다. 이런 병폐는 어디서 연유했는가. 그것은 뒤틀린 한국 근현대사의 특수성에서 비롯됐다고 정 교수는 말했다. 한마디로 한국사회의 식민지적 구조 때문이다. 근대 한국교육은 출발부터 일제의 우민정책에 의해 자생적 발전 토대가 거세당했다. 일제는 일차적으로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 자녀들을 위해, 부차적으로는 식민지 조선인을 식민지배의 하위 파트너로 양성하기 위해 경성제국대학을 정점으로 하는 식민교육체제를 구축했다. 따라서 근대 한국교육은 근대적 시민 양성이나 학문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식민지 구조에 기생하는 속물적 소수 엘리트 양성코스로 전락했다. 독립지사보다는 경성제대를 나와 식민지배에 복무한 졸업생을 우러러보는 학벌의 내면화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광복 뒤 ‘국립서울대학교안’을 밀어붙여 서울대를 학벌위계의 꼭대기에 앉혀 놓은 미 군정기의 교육정책도 “신식민지 지배전략”에 따른 일제교육 복사판이었다고 했다. 서열화를 근간으로 한 학벌체제가 핵분열한 1980년대 대학교육 대중화 이후 교육의 식민지적 구조는 확대 재생산됐다. 학벌해방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자본과 화폐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물적 구조를 건드리지 않은 채 학벌중심사회에서 능력중심사회로 사회풍조를 바꿔야 한다는 캠페인 방식으론 불가능하다. 지역균형 인재등용제도 등 학벌주의를 완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기득권층 반대로 불가능하며 설사 도입돼도 소수 엘리트의 지역균형 달성 이상의 효과는 없다. 정 교수는 대학서열체제 폐지, 곧 대학평준화가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역시 특집의 하나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에서 홍세화 ‘학벌없는사회’ 공동대표는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이 공익을 목표로 하는 사회로서, 법의 권위가 지배하는 국가”가 근대 공화국이라면 한국은 공화국이 아니라 사회귀족체제라 규정했다. 그리고 대학원까지 무상교육을 받을 수 있는 프랑스에 대비되는 한국 교육현실의 이중 모순을 지적했다. “한쪽(프랑스)에서는 개인주의 사회답게 상대적으로 개인의 자유, 적성과 창조성을 중시하는 교육을 펴면서, 각 개인은 학비를 내지 않고 국가가 부담한다. 한국에서는 개인의 자유·창조성·적성보다 국가주의를 교육하고 복장과 용모를 단속하고 타율적 질서의식 형성과 안보 이데올로기 교육, 학생을 국가경쟁력을 위한 인적 자원으로 보는 교육을 펴면서, 교육비는 국가가 부담하지 않고 개인이 부담한다.” 특집은 이밖에 지난 60년 세월이 만들어낸 또 다른 대표적 병리현상으로 권력과 유착하면서 공익을 파괴한 재벌과 언론의 파행을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