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는 내가 가진 성향의 단점을 알고 못고쳐서 참 힘들었던 적이 있어요.
내 삶의 흔적이 나의 성향으로 해서 내가 만든 듯 해서 가끔씩 자책하고 아팠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가진 성향을 너무 고치려고 드는건 옳지못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 인정하자.
충분히 열심히 살았고 이정도면 참 괜찮은 사람이다. 나는.
요즘은 그리 생각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고쳐지는 부분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주위를 불편하게 하는 일은 가능한 하지않도록 노력하자.
저는 대학생인 큰딸아이를 키우면서 힘들었던 점은 많은데
그아이로 해서 다른 사람을 보는 이해의 폭이 넓어진 듯 해요.^**^
금발머리로 톡톡튀는 모습으로 다니는 아이
장애우와 지리산산행으로 일출을 보고 감격에 겨워하는 아이
꼭 곧은 길로만 가는 삶을 바르고 성공으로 보았었는데
이젠 내 아이들의 각자의 삶을 존중해주고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딴지총수 김어준의 '건투를 빈다' 읽고 있습니다.
참 ~~~~~~~ 멋지네요. 야인의 냄새가 폴폴나는
그러나 명쾌하고 군더더기없는 해결법이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참 세상을 사는 방법은 여러가지구나!
흐릿한 가을날에 써 주신
'잘 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그래요. 맞아요. 감사합니다.
예전에 뭐가 그리 힘들었는지
정말 아무일도 아닌 일들에 바둥거린 시절이 있었어요.
아이들 학교 보내고 혼자 식탁에 앉아 신문을 보며 밥을 먹다
울컥한 적이 있었어요.
책 서평내용 중 "괜찮아"라는 글에 눈물이 핑 돌았지요.
그리고 제게 정말 필요한 말이 "사랑해"라는 말보다
그 시절엔 "괜찮다."는 말이라는 걸 알았어요.
그 시절 누구하나 저를 보며 괜찮다는 말 해주는 이 없이 혼자 바둥거리고 있었죠.
신문의 그 글귀 "괜찮아"는 그날 아침 식사 중 제게 눈물나게 큰 위로를 주었어요.
그때 저도 덩그러니 허공에 떠서 무엇이 옳은지 답답해 할 때였죠....
맞아요. 괜찮아요.괜찮아요.....지금까지 잘하고 있었지요. 정말 잘~살아왔지요.
우리 모두요....
John Grisham의 소설 "A Time To Kill" 에 보면 딸 강간범들(백인)을 살해한 흑인 아버지가 자신의 변호사로 백인을 선임합니다. 그 이유로 "여러 흑인들이 흑인의 권리를 항변하는 것 보다 한 사람의 백인이 흑인들의 인권을 옹호하는 것이 판사와 배심원단에게 더 호소력이 있어서"라고 합니다. 그 흑인 아버지는 승소하고 무죄로 석방되죠.
얼마전 우리나라의 사교육 열풍에 대한 흥미있는 연구결과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사교육에 목메고 집착하는 것은 고학력 부모들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사회에서 학력에 따른 차별을 받아봤거나 혹은 받고 있기 때문이다. 고학력을 필요치 않는 직업군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사교육에 과도하게 집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벽돌공은 중졸이든 고졸이든 전문대졸이든 몸이 튼튼하고 벽돌만 정교하게 잘 쌓으면 되기 때문에 ....."
학벌철폐나, 학력차별 없애자는 운동도 고학력자들이 나서야만 한다면
그 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요?
이런 사회적 현상을 무시하고 개인적 행복추구가 가능한 것을까요?
내가 '한'공부해서 원하는 것들 얻었을 때는 별로 문제인 것 같지 않던 일들이
엉망인 아들성적을 받아보고
그에 따른 여러가지 문제들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면서 드는 고민입니다.
진심어린 격려의 말도 해주기 조심스러운 시기가 또 다시 찾아왔네요.ㅠ.ㅠ
수험생과 그 가족분들 어찌 됐든 서로 많이 안아주고 사랑해 주세요~~~~
행운을 빕니다.